1945.08작품 보기광양서국민학교 내 태극기 게양 사진8.15 해방해방이 되자 광양서국민학교 교정에 일장기를 변조해 만든 태극기가 게양되었다. 오른쪽에 아직 철거되지 않은 신사참배단이 보이고 그 앞에 파헤쳐진 운동장은 일제가 식량조달을 위해 밭터로 가꾸어놓은 곳이다.
1948.10작품 보기여수서국민학교 교정 사진여수·순천 사건사태진압에 나선 국군들이 반란폭도와 양민을 가려내기 위해 주민들을 한곳에 모아놓았다. 오른쪽 대열에 있는 사람들이 부역 혐의자로서, 이들 중 89명이 11월 1일 처형되었다.
1950.03작품 보기전남도청 회의실에서의 제1기 징병검사6.25 전쟁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방력 강화를 위해 1949년 8월 6일 병역법이 공포되어 만 20세 이상의 남성에게 병역 의무가 부과되었으며, 1950년 초부터 전국적으로 제1기 징병검사가 시행되었다. 전남도청 회의실에서의 징병검사 사진이다. 광주시장 윤영선(尹泳善)과 광주 병사구 사령관 김정호 대령이 징병관을 맡았다.
1950-1960작품 보기교실 수업 풍경일상·풍경선생님이 가리키는 곳에 집중하며 설명을 듣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사진이다. 수집 당시 필름 및 보관상자 등에 '학습활동' 이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1945.08.15작품 보기시국수습국민회의 노산 이은상8.15 해방광양경찰서 무덕전에서 열린 시국수습국민회의 사진이다. 이 회의는 뒤에 결성하게 되는 건국준비위원회의 초기형태가 된다. 왼쪽의 안경쓴 이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풀려나 광양에 내려와있던 노산 이은상(李殷相)이다.
1948.10작품 보기불타고 있는 여수시가지 사진여수·순천 사건불타고 있는 여수시가지 사진이다. 제주도 항쟁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은 여수 14연대 병력은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밤의 여수>라는 제목으로 1949년 전국종합사진현상공모전에 입상하였다.
1950.03.01작품 보기3.1절 기념식6.25 전쟁서울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3.1절 기념식 사진이다. 앞줄 왼쪽부터 상공부장관 임영신(任永信), 내무부장관 윤치영(尹致映), 국무총리 이범석(李範奭), 국회의장 신익희(申翼熙), 윤치영과 이범석 사이로 보이는 이가 경찰청장 장택상(張澤相)이다.
1957.03작품 보기국립 경주 박물관문화유산국립 경주 박물관 뜰에 전시된 나한상들 사진이다. 수집 당시 필름 및 보관상자 등에 <이경모 고희사진전> 이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1945.08.17작품 보기광양서국민학교 교정에 모인 군민들 사진8.15 해방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축하하기 위해 전남 광양서국민학교 교정에 모든 군민들 사진이다. 당시는 태극기가 없었으므로 일장기에 먹으로 그려서 만들었다. '고려독립축하'라고 쓴 휘장도 보인다.
1948.10작품 보기전남 승주군 주암 사진여수·순천 사건반란군들을 진압하기 위해 광주에서 여수로 이동하는 진압군 사진이다. 반란군들은 우세한 진압군과 전투를 계속하면서 점차 여수에서 철수하여 순천을 장악하고 있던 반란군과 합세하여 백운산을 경유, 지리산 일대로 들어가게 된다.
1948.10작품 보기김영배의 시신을 거두는 가족들여수·순천 사건경찰은 반란군에 쫓겨 후퇴하면서 가둬두고 있던 좌익 사상범 용의자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갔다. 서울대 법대에 다니다 고향에 내려와 은신하고 있던 김영배(당시21세)가 그런 희생자 중의 하나였다. 그의 사족들이 광양과 순천의 경계에 있는 덕내리 골짜기에서 아들의 시신을 찾아내 거두고 있다.
1949작품 보기광양 혼례식 전경일상·풍경신랑이 신부네집에서 있을 혼례에 참석하기 위해 자기집 문을 나서고 있다. 닭을 든 이의 뒤로 '이대통령 만세', '대한민국만세'라 씌여진 문패가 보이고, 오른쪽 끝 대문 위에는 그 집 식구들의 생년월일과 이름을 적어놓은 명패가 보인다. 이 명패는 불순분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당국의 지시로 달아놓은 것이다.